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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간조선 | 시사이슈 ]

박정희 탄생 100주년 운동권 출신 5인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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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서울 장충단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박정희 대통령 photo 조선일보  

 


 

 

11월 14일은 고(故)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다. 1917년 11월 14일 경북 구미시 상모동에서 태어난 박정희는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뒤 18년간 한국을 바꿔놓았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총탄에 쓰러지기까지 그의 18년은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었다.


집권 18년간 그는 무수한 오해와 비난에 시달렸다. 경제개발 종잣돈 마련을 위해 한·일 국교정상화를 단행할 때는 ‘친일파’로 매도당했다. 대일청구권자금을 활용해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을 건설할 때는 ‘몽상 가’로 손가락질당했다. 


정치 비중을 축소하는 유신(維新)을 단행해 중화학공업을 일으키려 했을 때는 ‘독재자’로 비난받았다. 하지만 그가 비난을 무릅쓰고 이뤄낸 한·일 국교정상화,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자동차와 조선, 전자공업 덕분에 한국은 1976년부터 경제력에서 북한을 앞질렀고, 세계 10대 경제국 대열에 진입할 수 있었다.


박정희는 집권 18년의 족적이 워낙 거대하기에 그만큼 그림자도 짙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지금도 그를 둘러싼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박정희 덕분에 우리는 지금 1인당 GDP 2만7561달러의 국가에 살게 되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당초 계획되었던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은 돌연 취소됐다.


서울시내에 기념동상을 세우는 일마저 여의치 않다. 주간조선은 박정희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때 그를 비판했던, 70대부터 40대까지 운동권 출신 인사 5인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세중(71) 전 연세대 교수의 박정희에 대한 평가다. 

 

“인류 역사를 크게 두부분으로 나누면 산업혁명 전후로 나뉘 는데, 한국은 박정희 시대 때 산업혁명을 통해 전근대적이고 정태적인 농업사회에서 근대적이고 동태적인 공업사회로 변모했다”는 것이 김세중 교수의 주장이다. 

 

박정희에 대한 그의 평가가 처음부터 후(厚)했던 것은 아니다. 1946년 생인 김 교수는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초·중·고를 나왔다. 서울사대부고 3학년 때는 레슬링선수로 활동 했는데, 부상을 당해 고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68학번으로 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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