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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만남 | 문학/책 ]

죽음을 뛰어넘는 '지독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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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1월 14일. 한 신문에 시조 한 수의 자필 원본이 발굴되어 공개되었다. 황진이 계랑과 함께 조선의 3대 기녀로 불리는 여류시인 홍랑이 쓴 시조였다. 이 원고는 최경창을 향한 홍랑의 애틋하고 고결한 연정 만큼이나 정갈한 글씨체로 쓰여 있었다.

 

김성진|부산대 교수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대 자시는 창밖에 심거두고 보소셔 밤비에 새닢 곧 나거든 나인 줄로 여기소서

 

 

 

이 시조의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홍랑이 이 시조를 지어 정인(情人)에게 전해주는 그때의 그 모습을 생각하면 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아려온다. 홍랑은 한양으로 돌아가는 최경창을 차마 그냥 보내지 못해, 함경북도 최북단의 경성에서 무려 1,300리 길을 걸어 내려와 함관령 고갯길에서 이 시조를 전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임을 떠나보내고 홀로 천리 머나먼 길을 되돌아갈 때 홍랑의 마음이 어떠했으랴.

 

후세 사람들이 ‘지독한 사랑’이라고 하는 홍랑과 최경창의 만남도 매우 극적이다. 1573년 가을. 최경창은 34세의 나이로 함경도 경성에 북도평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부임길에 함흥을 지나 홍원 객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 최경창은 홍원군수가 베풀어주는 연회에서 청순한 한 기녀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최경창이 이 기녀를 불러 자신을 위해 시조창(唱)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묻자, 이 기녀는 자신은 ‘창보다 시를 좋아한다’고 하였다. 최경창이 누구의 시를 좋아하느냐고 묻자 고죽(孤竹: 최경창의 호)의 시를 좋아 한다고 답했다. 최경창이 ‘그 고죽이 바로 나다’라고 말해줬고, 그렇게 해서 홍랑과 고죽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홍원의 관기였던 홍랑이 어떻게 경성의 본영에 가게 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홍랑은 곧장 최경창을 따라 경성의 막사에 가서 부부처럼 지냈다.

 

 

 

 

당시의 제도상 북관에는 처자가 동행할 수 없었던 때문으로 관기가 수발을 드는 것이 관례였던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 이듬해 최경창이 한양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최경창은 조정의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없고, 홍랑은 관기이기도 하고 평안도와 함경도 사람들은 도성 출입을 금한다는 ‘양계의 금’이있어 서울로 따라갈 수 없었던 것이다.

 

여인의 몸으로 1,300리 길 그 머나먼 길을 배웅하고 돌아와 수심에 찬 세월을 보내고 있던 홍랑에게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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